종묘제례 > 다시보는 우리문화

본문 바로가기

다시보는 우리문화
HOME   >  교화   >   교양   >   다시보는 우리문화  

다시보는 우리문화

종묘제례


페이지 정보

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8.01.09 조회2,139회 댓글0건

본문

왕의 신주(神主)를 모신 사당으로서의 종묘, 여기서 이루어지는 제례는 위로는 왕실의 조상 숭배와 아래로는 ‘효’를 통하여 백성을 통치하기 위한 정치이념으로써 더욱 강조되었다. 국가적 차원에서 신과 인간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장(場)의 세계가 종묘인 것이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창이 닫힙니다.

▲ 종묘

 

▩ 종묘의 유래와 역사

 

종묘는 국가 사당이며 천명을 받아 국가를 창업했다고 평가되는 국가 시조의 신주를 모신 사당을 뜻한다. 나라의 천명과 그 명을 받은 초월적 존재자의 혼령이 머물고 있는 신성지로서 국가와 운명을 같이하였다. 종묘는 기록상으로 중국의 하ㆍ은ㆍ주 삼대(三代)부터 존재했다고 전해진다. 『예기(禮記)』의 「왕제(王制)」편에 의하면, “선조를 제사지내는 데 있어 천자는 7묘(廟)를 세운다. 3소(三昭), 3목(三穆)과 태조의 묘를 합쳐서 7묘가 된다. 제후는 5묘를 세운다. 2소(二昭), 2목(二穆)과 태조의 묘를 합쳐서 5묘가 된다. 대부는 3묘를 세운다. 1소, 1목과 태조의 묘를 합쳐서 3묘가 된다. 사(士)는 1묘를 세워서 합사(合祀)한다. 서인은 침실에서 제사지낸다.”01이라고 하여 천자, 제후, 대부, 사, 서인의 묘제가 차등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여기서 묘제는 바로 종묘제도를 뜻한다. 천자, 제후, 대부의 묘제 중에 ‘태조의 묘’가 보이고 있는데 이 묘가 바로 국가 시조묘였으며 옮기지 않기 때문에 불천위(不遷位)02라고도 한다.

 

한편 『의례』 「사관례(士冠禮)」편의 ‘계세이립제후 상현야(繼世以立諸侯 象賢也)’라는 구절을 보면 종묘가 주는 중요한 시사점을 알 수 있다. 정현(鄭玄)03의 주(注)에 따르면 “자손이 능히 선조의 현명함을 본받기 때문에 대대로 세습시킨다.”라는 의미다. 이는 바로 후손이 선조의 현명함을 이어받았다는 사실에서 작위(爵位)와 봉토(封土) 세습의 정당성을 찾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종묘가 처음으로 세워진 것은 삼국시대였다. 『삼국사기』 잡지(雜志) 「제사(祭祀)」에 의하면 신라 남해왕 3년에 시조 혁거세묘를 세우고 사시로 제사를 지냈다. 신라의 묘제 중에서 불천위는 태조 묘와 조공종덕(祖功宗德)04의 묘로 이루어져 유교 예제를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 종묘제가 길례(吉禮)로서 유교적 예제로 확립된 것은 고려시대다. 고려의 종묘는 전란으로 수차례 불타기도 하고 또한 왕위가 형제간에 상속된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복잡한 논란 속에서도 왕건의 태조 묘와 혜종, 현종 등이 불천위로 모셔졌다.

 

고려 성종 때 들어서 왕실의 조상숭배를 통하여 유교적 윤리질서를 확립하고자 하였다. 성종 7년(988년)에 최승로의 시무28조05에 근거한 유교적 국가 통치이념에 따라 원구단, 사직단의 정비와 아울러 종묘제도가 정비되었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국가와 사회가 유교화되면서 종묘와 사당이 국가와 사회의 중요 제도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예로부터 왕조의 개창과 계승이라는 의례적인 상징성으로 인하여 사직과 함께 ‘종묘사직’이라 불릴 만큼 왕조의 상징성을 강조하였다.

 

▩ 건물로 본 종묘

 

오늘날은 정전(正殿)과 영녕전(永寧殿)을 포함하는 일대를 모두 종묘라고 하나, 조선시대 초에는 지금의 정전만을 종묘라 하였다. 정전이라는 명칭은 영녕전과 구별하기 위해 근대에 붙인 이름이다. 종묘는 조선 태조의 신위를 모신 곳이라 하여 태묘라고도 하며, 조종과 자손이 길이길이 평안하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 영녕전은 4대가 지난 왕과 왕비의 신위를 정전으로부터 옮겨 모시는 또 다른 사당이라 하여 ‘조묘(祖廟)’ 또는 ‘별묘(別廟)’라고도 한다. 그런데 태조를 비롯하여 선왕(先王) 중에서 큰 공적이 있는 왕의 신위를 불천위(不遷位)라 하여 4대가 지나도 영녕전으로 옮기지 않고 계속 정전에 모시게 되었으며, 영녕전에는 태조의 4대조인 목조, 익조, 도조, 환조와 5대 이상의 원조(遠祖) 중에서 정전에 모셔지지 않은 왕과 추존(推尊) 왕, 그리고 그 왕비의 신위가 모셔져 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창이 닫힙니다.

종묘에는 그 당시 왕의 혈연적 조상뿐만 아니라 일종의 정치적 조상이라고 할 수 있는 위패들도 모시고 있다. 이른바 공신당(功臣堂)이라고 하며 이곳은 왕을 보좌하여 훌륭한 정치를 한 신료들을 모신 사당이다. 현재 종묘의 공신당에 모셔진 신하들은 모두 조선을 대표하는 관료들이다. 이 외에도 종묘에는 왕을 포함한 국가구성원들의 운명을 관장한다고 간주되는 일곱 신06을 모신 칠사당(七祀堂)이 있다. 칠사는 배향공신(配享功臣)07보다 위로 여겼기 때문에 서쪽에 위치한다. 특히 납일(臘日)의 제향에는 두루 제사 지내는데, 납향이 12월에 만물을 모아서 제사를 지내는 것이기 때문에 칠사를 모두 합사(合祀)한다고 한다. 그러나 종묘의 중심건물은 어디까지나 건국자 이성계를 중심으로 한 정전이다. 이 정전은 조선의 통치권의 발생 및 그 계승의 정통성의 밑바탕을 이루게 하였다.

 

▩ 종묘제례의 절차

 

임금 및 제관(祭官)들은 제향을 올리기에 앞서 모두 청정한 상태에서 신을 맞이하기 위해 7일간 재계(齋戒)의 과정을 거치게 되며, 제향 하루 전 궁궐에서는 제향에 쓸 향과 축(祝 : 축문)을 임금이 헌관(獻官)에게 전달하는 의식을 행한다.

 

재계를 끝낸 임금은 날이 바뀌어 축시가 되면, 수많은 촛불과 등잔유(燈盞油), 조촉(照燭)08 그리고 횃불이 신실(神室)의 내외 및 묘정(廟庭)을 밝히는 가운데 제례를 올리게 된다. 제례는 유교 예법에 맞추어 신을 맞이하는 절차, 신이 즐기는 절차, 신이 베푸는 절차, 그리고 신을 보내는 절차로 구성되며, 나라의 중요한 의례인 만큼 절도 있는 격식에 맞추어 진행된다.

 

영신례(迎神禮)

 

먼저 정전의 신문(神門)에서 축함(祝函)을 들고 신로(神路)를 따라 들어오는 봉축의례(奉祝儀禮)를 시작으로 제례는 시작된다. 제관 이하 참석자 모두가 취위(就位)라 하여 미리 정해진 자리에 가서 서게 되는데, 이때 제관들은 신(神)을 맞이하기 위해 몸과 마음을 정결히 하는 의미로 손을 씻는 관세의식을 행한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창이 닫힙니다.

외부 준비가 다 되면 임금은 동문(東門)을 통해 묘정(廟庭)으로 들어와 신을 맞이하는 절차인 영신례(迎神禮)로서 제관들과 4배를 하고, 이어 신(神)을 강림(降臨)케 하는 의식인 신관례 를 제례악인 보태평(保太平)09의 연주와 일무10원(佾舞員)들의 보태평 춤과 함께 행하게 된다. 신관례는 하늘로부터 혼(魂)을 모시는 의미로 향을 세 번 피우고[三上香], 땅으로부터 백(魄)을 모시는 의미로 술[울창주 ]11을 세 번에 나누어, 관지구(灌地口)12를 통해 땅으로 붓는 관지(灌地)의식을 말한다. 이어서 신에게 바치는 예물로서 흰 모시를 올리는 전폐례(奠幣禮)가 뒤를 잇는다.

 

다음 의식인 천조례(薦俎禮)는 신을 위해 익힌 음식을 올리는 절차이다. 이것은 희생을 올린다고 조상에게 고(告)하는 의미로 미리 잡은 소, 양, 돼지의 털과 피를 창자 사이에 있는 기름 및 간(肝)과 함께 신위 앞에 올리고, 그 중 간(肝)을 취하여 준소(尊所)13 밖에 놓여 있는 숯불 화로에서 부정을 제거하는 뜻으로 태운다.

 

헌례(獻禮)

 

천조례 다음은 신이 즐기는 절차로서 상월대에 위치한 등가(登歌)에서 보태평지악을 연주하고, 묘정(廟庭)에서는 일무원들의 보태평지무가 펼쳐지는 가운데, 임금이 신위 앞에 나아가 예제(醴齊 : 단술)로서 첫 술잔을 올리는 초헌례(初獻禮)가 이어진다. 끝나면 잠시 악(樂)이 멈추고 축문을 낭독하는 독축(讀祝)을 행하며 마치면 다시 악(樂)을 연주한다. 이어서 아헌관인 왕세자가 앙제[흰빛 술]를 올리는 아헌례(亞獻禮)가 행해지며, 이때 하월대에 위치하는 헌가(軒架)에서는 정대업지곡(定大業之曲)14을 연주하고 일무원들은 정대업지무(定大業之舞)를 추게 된다. 이어 종헌관(終獻官)인 영의정에 의해 청주(淸酒 : 오래 익힌 술)가 올려지는 종헌례(終獻禮)가 정대업 곡의 연주와 정대업 춤이 펼쳐지면서 아헌례와 같은 방식으로 진행된다. 한편 종헌례 도중에 배향공신(配享功臣)과 칠사 신에 대한 제사도 함께 행하여진다.

 

음복례(飮福禮)

 

종헌례가 끝나면 신이 베푸는 절차인 음복례(飮福禮)가 이어지는데, 조상신이 흠향한 제1실의 술과 음식을 후손인 임금이 들면서, 조상이 주는 복을 받는다는 의미에서 행하는 절차이다. 다음 절차인 철변두는 제기인 변과 두(豆) 각 1개씩을 조금 옆으로 옮김으로써 제례를 위해 준비한 음식을 치운다는 의미를 나타내는 의식이다. 이때 등가(登歌)에서는 옹안지악(雍安之樂)이 연주된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창이 닫힙니다. 

 

송신례(送神禮)

 

음복례를 마치면 제례의 마지막 절차인 신을 보내는 의식인 송신례(送神禮)를 행하며, 흥안지악(興安之樂)의 연주와 함께 4배를 올림으로써, 임금은 정성을 다하여 행하였던 모든 예를 마치고 재궁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런 후 마지막 의식으로 축(祝)과 폐(幣)를 태우는 망료례(望燎禮)가 이어진다. 요대(燎臺)에서 타오르는 연기와 함께 하늘로 돌아가는 조상들의 혼(魂)을 아헌관이 망료위(望燎位)에서 바라보는 의식으로 제례는 모두 끝나게 된다. 최고의 격식과 정성으로 대접 받은 조상들의 혼백은 이제 하늘과 땅으로 돌아가 이 나라의 안녕과 번영을 보살펴 주게 될 것이다. 이러한 모든 절차는 엄숙하고도 지극한 정성으로 진행된다.

 

▩ 종묘제례의 현대적 의의

 

일제 강점기 때 끊어졌던 종묘제례는 1969년부터 사단법인 전주이씨 대동 종약원의 주관으로 복원되었으며 중요 무형문화재 제56호로 지정되었다. 500여 년 조선왕조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생동감이 넘치는 역사의 현장인 종묘는 유네스코에서 ‘인류 구전(口傳) 및 무형 문화유산’으로 선정되었다. 맞이한 신이 즐기고, 그 신이 베풀며, 다시 신을 보내는 일련의 과정 속에 담겨 있는 정성과 조상 숭배라는 보은(報恩), 그리고 국가 안녕과 번영의 기원이란 메시지는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한 오늘날 우리를 되돌아보게 하고 있다. 종묘제례와 같은 규모가 크며 장엄한 행사는 세계적으로 보기 어렵다.

 

종묘제례가 조선왕조의 정당성을 위한 바탕이 되었지만 그 속에 스며있는 조상숭배는 주체성을 확고하게 해주는 일 중의 하나일 것이다. 우리 선조들이 돌아가신 조상께 예를 다하며 인도(人道)의 길을 걷고자 하셨던 일이 새삼 자랑스럽게 느껴진다. 조상에 대한 인식이 소원해지는 이 시대에 종묘제례는 전 세계인들에게 자신들의 근본을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것 같다. 매년 5월 첫째 주 일요일에 서울 종묘에서 종묘제례가 행해지고 있는데 기회가 닿는다면 직접 참관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참고자료

 

ㆍ 『천년의 이야기』, 문화재청 관리소, 2008

ㆍ 『종묘제례』, 국립문화재연구소, 2008

ㆍ 『종묘대제』, 문화재단, 한국문화재보호재단, 2010

ㆍ 윤홍로, 『종묘』, 문화재청 종묘관리소, 2008

 

 

<대순회보 111호>

 

 

01 “天子七廟 三昭三穆與太祖之廟而七 諸侯五廟 二昭二穆與太祖之廟而五 大夫三廟一昭 一穆與太祖之廟而三 士一廟 庶人祭於寢”-소목(昭穆)은 종묘에 신주를 모시는 차례다. 천자는 태조를 중앙에 모시고 2세ㆍ4세ㆍ6세는 소(昭)라 하여 왼편에, 3세ㆍ5세ㆍ7세는 목(穆)이라 하여 오른편에 모시어 3소ㆍ3목의 7묘이고, 제후는 2소ㆍ2목의 5묘이다.

02 공훈이 있는 사람으로서 영원히 사당에 모시기를 나라에서 허락한 신위.

03 중국 후한(後漢)의 경학자. 여러 경서에 주석을 달아 한대 경학을 집대성했으며, 정학(鄭學)으로 불렸다.

04 조와 종을 묘호라 하는데 공이 있는 왕은 조(祖) 자를 붙이고 덕정을 편 왕은 종(宗) 자를 붙였다. 태조 1년에 정해짐. 조공종덕이라는 말의 유래는 사마천이 지은 『사기』 「효문본기(孝文本紀)」에서 문제(文帝) 유항(기원전 203~157)에 의하면 “왕 중에서 공적이 있는 자는 "祖"라고 하고, 덕망이 있는 자는 "宗"을 붙여 사용한다(祖功宗德)고 하였다”는 데에서 비롯된 것임.

05 “불교를 행하는 것은 몸을 닦는 근본이며, 유교를 행하는 것은 나라를 다스리는 근원이니, 몸을 닦는 것은 내생을 위한 것이니,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곧 오늘의 할 일입니다.” 라는 내용 등으로 이루어져 있음.

06 사명(司命), 문(門), 호(戶), 조 , 중류 , 여 , 행(行) 등의 일곱 신(神)을 의미한다.

07 조선시대 종묘에 신주를 모신 공신.

08 음악의 시작과 그침을 알리는 도구로, 장대 끝에 붉은 비단 농(籠)을 걸고, 그 안에 초를 켠다.

09 조선 건국과 안정에 힘써 ‘태평시대를 구가하게 한’, 역대 옹들의 문덕을 기린 내용으로 되어 있다.

10 고대 아악에 쓰이던 무용으로 일(佾)이란 열(列)을 뜻하며 줄을 맞추어 추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이다. 세종시대에 중국 고대의 악무를 연구하여 재연한 것임.

11 울금향(튤립)을 넣어 빚은 술로 제사의 강신(降神)에 쓰임.

12 술잔을 받고 따르는 위치의 마룻바닥에 있는 땅과 연결되는 구멍.

13 제사 때 준상(樽床:술상)을 차리는 곳.

14 태조의 4대 선왕과 건국 이후 외적과 맞서 공을 세운 선왕들이 마침내 ‘대업(大業)을 정(定)’ 한 무공을 호기 넘치는 시어(詩語)로 만들어진 곡.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12616)경기도 여주시 강천면 강천로 882     전화 : 031-887-9301 (교무부)     팩스 : 031-887-9345
Copyright ⓒ 2016 DAESOONJINRIHOE.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