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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천국의 실현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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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청섭 작성일2019.03.24 조회1,31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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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산1방면 교감 이청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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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3일 개천절 날, 아침 일찍 여주에서 정읍과 김제 지역으로 답사를 떠났다. 가을바람과 햇볕은 들판의 곡식만 무르익게 하는 게 아니라, 사람의 마음도 무르익게 만드는 차분함이 있는 것 같다. 답사 간다는 것에 마냥 들뜨지 않으니 말이다. 그래도 일상을 벗어나 자연을 가까이서 만끽해 본다는 건 즐거운 일이다.


  정읍에 도착해서, 먼저 순대국밥 집에서 간단히 점심을 해결했다. 상제님의 자취가 곳곳에 있는 곳이란 생각 때문인지, 간판에 쓰인 ‘원조’란 글씨가 이 자리에서 그 옛날 상제님께서도 국밥을 드셨을 법한 주막 터는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스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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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읍에 와서 빼놓을 수 없는 답사지 중 하나가 ‘섬진강 유역변경식 발전소’일 것이다. 전북 7읍의 흉년극복 프로젝트! 1909년 상제님께서 화천하시기 전에 말씀하신 이 공사는, 일제 때인 1925년 운암댐과 운암발전소를 시작으로 해서 몇 번의 보수 공사를 걸쳐 오늘날과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최다우(最多雨)지역이라 홍수 피해가 많던 섬진강 유역의 물을 ‘유역변경’하여, 물 부족으로 가뭄을 겪던 동진강 쪽에 공급함으로써 홍수와 가뭄이 모두 해결된 것이다. “전국에 수해가 나도 이곳만은 비켜간다”는 말이 상제님 공사 결과를 실감나게 한다. 산에 터널을 뚫어 물의 낙차(落差)로 김제를 비롯한 여러 지역에 물이 공급되어 농업용수와 식수로 쓰인다고 하니, 무위이화(無爲以化)로 베풀어지는 덕화를 당연히 여기며 고마움을 못 느끼며 사는 게 어찌 이 뿐일까.


  처음 도를 접하면서 상제님의 존재와 공사보신 행적(行蹟)들을 미심쩍어 했던 시절, 『전경』에 나온 이 공사가 상제님 화천 후 역사 흐름을 따라 그대로 이뤄진 것을 알고 여기에 뭔가 있구나란 생각을 가진 적이 있었다. 훗날 믿는 사람들에 의해 끼워 맞춰진 게 아니고, 엄연히 1909년 전에 말씀하신 내용이 후대에 이루어졌으니 말이다. 나뿐만 아니라 당시 따르던 종도들도 이런 일들로 확신이 들어 아직까지 상제님 오시길 기다리는 게 아닐까?


  옆 골목으로 들어가니 사람의 손길이 닿은 지 오래된 듯한 무덤들이 보였다. 이 무덤은 상제님께서 수천 명의 무고한 인명 피해가 날 것을 염려하여 공사를 보셔서 소수만 희생되었다는 일진회원들의 무덤이었다.(행록 3장 18절) 우거진 풀들과 호박밭 사이에 서있는 비석 그리고 오랜 세월로 닳은 비문 등 쓸쓸해 보이는 이곳을, 우산처럼 가지를 늘어뜨린 소나무 한 그루만이 외로이 지키고 있었다. 


  12시경, 드디어 황토현 동학혁명기념관에 도착했다. 상제님 탄강지인 객망리와도 가까운 이곳 황토현은, 동학농민군들이 관군과 맞서 싸워 대승을 거둔 곳으로 이후 동학혁명운동이 크게 확대되는 계기가 마련된 곳이기도 하다. 이곳 기념관은 상제님의 천지공사가 책 속에만 있는 박제된 과거 이야기가 아닌, 현재까지도 살아 숨쉬며 이어지는 것임을 느끼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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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사진에 실린 당시 농민들은, 역동적인 모습으로 그려진 기록화와는 달리 정말 초라하고 불쌍하며 무력한 모습들이었다. 상제님의 강세가, 단순히 우리나라가 뭔가 특별한 나라니까 당연히 오신 게 아니라, 정말 당시의 조선 상황이 “…이 땅에 머문 것은 ‘무명의 약소민족’을 먼저 도와 만고의 원을 풀어주려 하노라.”(권지 1장 11절)고 하신 말씀 때문인 것 같았다. 


  더구나 당시는 세계적으로 영토획득 전쟁이 치열했던 제국주의 시대라, “동양 형세가 그 존망의 급박함이 백척간두에 있다.”(공사 1장 13절)는 절박함까지 있었다. 동아시아의 오랜 지배자였던 중국[청(淸)]마저도 허무히 무너질 정도였으니 말이다. 


  ‘서양에게 넘기면 인종차별로 살아나갈 수 없다.’(공사 2장 4절)는 것도 실감났다. 특히 영국이 지배했던 인도에서, 세포이(영국군이 고용한 인도인들)들의 반항을 가혹하게 진압했던 기록들은 그때만의 일이 아닌 것 같다. 종교상의 금기인 동물의 피를 먹게 하거나 사람 취급을 하지 않고 학대했던 모습들이, 200여 년 후 이라크 전쟁에서 영국인들의 이라크인 포로들에 대한 지나친 학대로 떠들썩했던 기사 내용과 비슷하단 생각이 들었다. 백인우월의식은 오랜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많이 바뀌었어도 변하기 어려운가 보다. 


  이러한 때에 영국의 생물학자 찰스 다윈이 ‘종의 기원’을 발표하였다(1859). 모든 생물들은 환경에 적응하면 진화되어 살아남지만,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되어 사라진다는 것이었다. 이는 곧 강대국들의 약소민족 지배를 정당화하고 합리화하는 데 왜곡 이용되었다. 그래서 그들을 무자비하게 지배하는 것에 조금도 양심의 가책이 없었다고 하니, ‘상극에 지배된 세상’이요, “묵은 하늘은 사람을 죽이는 공사만 보았다.”(공사 1장 11절)는 말씀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질 따름이다.


  가을의 손길은 어디서고 느낄 수 있겠지만, 차를 타고 다음 행선지인 벽골제(碧骨堤)를 향해 가면서 양쪽 길에 줄지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코스모스 꽃길은 보는 이로 하여금 더욱더 가을에 취하게 만드는 것 같다. 


  와보니 벽골제의 ‘지평선 축제’가 한창이었다. 김제평야의 대지가 끝없이 광활하여 마치 하늘과 땅이 맞닿은 것처럼 보이는데, 바다에 수평선이 있다면 땅에는 지평선이 있다하여 이름이 이렇게 붙여진 것이다. 이 넓은 땅에서 우리나라 쌀 총생산량의 1/40이 생산된다고 한다. 


  저 멀리서 전국의 문화관광축제 중 최우수 축제로 4년 연속 1위를 했다는 현수막의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축제를 보겠다고 온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차량이 도로상에 빽빽이 늘어서 있었다. 도저히 차가 앞으로 나갈 기미가 안보여, 우리 일행도 차를 길가에 대충 세워놓고 다른 사람들처럼 걸어 들어갔다. 짜증날 법도 한데 꽃길 덕인지 화창한 날씨 덕인지 그런 도보도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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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벽골제의 ‘벽골’은 ‘벼의 고을’이란 뜻이며, 백제 때 만들어진 수리시설로써 가장 오래 되었으며 또 가장 규모가 크기도 하다. 전국 최대의 곡창 지대를 이루는 평야의 크기에 비해서, 만경·동진강 두 하천은 규모가 작아 호남평야의 전 지역에 물을 공급할 수 없어 벽골제가 만들어 진 것이다. 이처럼 중요한 수원지(水源池)였던 벽골제가 조선 세종 때 붕괴되어 그 역할을 제대로 못했다고 하니, 약 600년간 이곳 농민들은 벼농사의 물 공급을 오로지 하늘에만 의지해야 했던 것이다.


  일제는 최고의 곡창지대인 이곳에서 1903년부터 해방 직전까지 온갖 착취를 행했다. 그 당시를 배경으로 그려진 게 조정래의 대하소설 『아리랑』이다. 기름진 땅인 탓에 내 조국일 때도 망국일 때도, 농민들은 끊임없이 억울하게 빼앗기고 굶주려도 하소연할 데도 없이 울분만 삭혀야 했던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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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상제님께서 공사를 보셔서 곳곳에 물 공급이 원활히 이루어져 지금은 가뭄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되었고, 이제는 최고의 축제가 열려 전국에서 축제를 즐기러 오는 곳이 된 것이다. 풍요로움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곳 말이다!


  그래서인지 내게는 축제를 즐기러 온 북적이는 인파들과 하늘을 줄지어 나는 연의 모습이 더 남다르게 느껴졌다. 이 모습이 그 옛날 이 지역 농민들이 꿈꾸던 세상이 아니었을까? 풍선과 더불어 여기저기에 흩날리는 연들. 소원성취를 기원하며 날린다는 연의 모습에서, 사회적 족쇄와 억압에서 풀려나 자유로이 하늘을 날며 한껏 웃음 짓는 동학도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상제님께서 말씀하신 지상천국(地上天國)도 막연히 관념적으로 그치지 않고 그렇게 무위이화로 이뤄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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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으로 근처에 있는 망해사(望海寺)에 잠깐 들렀다. 때마침 운 좋게도 낙조가 이뤄지고 있었다. 발이 아파 천천히 가는 나를 두고 다들 서로 지는 해를 보겠다고 달려가 버렸다. 그리고 모두들 일몰을 바라보며 탄성을 질렀다. 나도 일몰을 직접 보기는 처음이었다. 한가로이 지나가는 고깃배를 앞에 두고, 저 멀리 바다 가운데 자그맣게 놓여있는 선유도(仙遊島)란 섬으로 해가 지고 있는 것이다! 섬 뒤편으로 떨어지는 해의 모습이 흡사 흐뭇하게 웃는 눈매 같았다. ‘천년의 미소’라는 수막새처럼 부드럽고 마음에 깊은 여운을 남기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새 세상을 꿈꾸다 덧없이 스러져간 동학도들이 해원되고 후세인들이 그들이 꿈꾸던 세상에서 축제 인파처럼 자유롭고 행복하게 사는 모습들을 보고 상제님께서도 흐뭇해하시는 게 아닐까란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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