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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양합덕의 면이수지(勉而修之)에 대한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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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8.05.21 조회3,38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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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님께서 대순진리회를 창설하신 목적을 밝히신 글이 바로 『대순진리회요람』의 「취지(趣旨)」문인데, 다음은 그 일부이다.

 

 

오직 우리 대순진리회(大巡眞理會)는 성(誠)·경(敬)·신(信) 삼법언(三法言)으로 수도(修道)의 요체(要諦)를 삼고 안심(安心)·안신(安身) 이율령(二律令)으로 수행(修行)의 훈전(訓典)을 삼아 … 음양합덕(陰陽合德) 신인조화(神人調化) 해원상생(解冤相生) 도통진경(道通眞境)의 대순진리(大巡眞理)를 면이수지(勉而修之)하고 성지우성(誠之又誠)하여 도즉아(道卽我) 아즉도(我卽道)의 경지(境地)를 정각(正覺)하고 일단(一旦) 활연관통(豁然貫通)하면 삼계(三界)를 투명(透明)하고 삼라만상(森羅萬象)의 곡진이해(曲盡理解)에 무소불능(無所不能)하나니 이것이 영통(靈通)이며 도통(道通)인 것이다.

    

 

이 글에는 대순진리회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도통을 위해 우리가 어떻게 수도해야 하는가 하는 방법과 과정이 개략적으로 제시되어 있다. 따라서 대순진리회의 도를 닦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이 내용에 대한 올바른 앎이 선행되어야 한다. 올바른 앎이라야 올바른 실천을 보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수도의 방법과 과정을 바르게 이해함으로써 우리는 도를 올바르게 닦아나갈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를 위해 수도인의 한 사람으로서 필자는 이 글에서 특히 ‘대순진리를 면이수지하고 성지우성하여’라는 구절에 주목하고자 한다. 이 구절이 전후 문맥으로 볼 때 도통에 이르는 과정에 대한 설명으로써 대순진리회의 정체성과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우리 대순진리회는 구천상제님께서 대순하신 진리를 종지(宗旨)로 하여 창설된 종단이다.01 ‘종지’란 말은 어떠한 종교의 근본 교의(敎義)로 ‘신앙인들이 믿고 실천해야 할 사항을 요약해 놓은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우리 종단은 대순진리를 믿고 실천하기 위해 창설되었다는 말이 성립하며, 이는 대순진리회의 정체성을 표명하는 말인 것이다. ‘면이수지’와 ‘성지우성’의 대략적인 의미는 ‘닦음’이라는 실천을 말하는 것으로 이 구절은 이러한 정체성을 잘 드러내고 있다. 따라서 이 구절에 담긴 의미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요할 것 같다.

    

 

대순진리를 면이수지하고 성지우성하여

 

먼저 ‘대순진리’란 개념을 간략히 설명하면, ‘구천상제님께서 천·지·인 삼계를 대순하시고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강세(降世)하시어 천지를 뜯어고치는 대공사(大公事)를 행하셨는데, 이 천지공사의 원리’를 말하는 것이다.02 구체적으로 이 대순진리는 위 인용문에서 밝힌 것처럼 음양합덕·신인조화·해원상생·도통진경의 4조목이다. 어떤 구체적 설계도면에 따라 구조물을 짓는 일에 비유하면 대순진리는 후천선경(後天仙境)을 건설하는 천지공사의 설계도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쉽게 이해해서 천지공사를 시작한 시점부터 이 우주를 비롯한 인간세계는 음양합덕·신인조화·해원상생의 원리에 따라 도수에 맞게 변화하여 궁극적으로는 도통진경으로 화(化)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면이수지(勉而修之)’에서 ‘而’는 말을 이어가는 접속사이고, ‘之’ 자는 ‘그것’이라는 뜻의 지시대명사로 사용되었다. 곧, ‘힘써서 그것을 닦는다’는 의미다. 여기에서 ‘닦는다’는 동사의 목적어에 해당하는 ‘그것’은 닦음의 대상이 되는 것으로 ‘대순진리’를 말한다. 정리하자면 ‘힘써서 대순진리를 닦는다’는 말이다. 이어지는 ‘성지우성(誠之又誠)’의 ‘之’는 ‘정성’(또는 참됨)이란 뜻의 ‘誠’ 자 뒤에 붙어 ‘誠之’가 ‘정성하다’(또는 참되게 하다)라는 동사가 되도록 한다. 그 다음의 ‘誠’ 자는 ‘誠之’에서 ‘之’가 생략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정성하고 또 정성하다’라고 해석된다. 이는 대순진리를 힘써 닦아나감에서 더 나아가 끊임이 없이 지극한 정성을 다한다는 뜻이다. 곧, 성지우성은 면이수지의 상태를 더욱 질적으로 향상시킨다는 것이다.

 

결국, 이 구절은 ‘대순진리를 힘써서 닦고 정성하고 또 정성하여’라고 해석되며, 대순진리는 닦음의 대상이 된다. 그러므로 대순진리는 닦음이라는 실천적 차원에서 파악하고 이해해야 한다. 대순진리를 자신의 몸에 닦아 그 진리가 일상에서 생활화되어 구현되었을 때 비로소 실천적 차원의 대순진리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수도의 본질이 실천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단지 대순진리에 해당하는 4조목의 개념에 대한 이론적 차원의 이해에 그친다면 수도의 본질과 동떨어진 일이 될 것이다. 반드시 음양합덕·신인조화·해원상생·도통진경의 대순진리는 실천적 측면에서 그 개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 글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였다. 그렇다면 이제 대순진리의 첫 번째 조목에 해당하는 ‘음양합덕을 힘써 닦는다’는 말이 우리의 일상에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실천하도록 한다는 것인가를 살펴보기로 하자.

 

 

음양합덕의 개념적 이해

 

일반적으로 ‘음과 양이 덕을 합한다’로 해석하는 음양합덕이란 말이 처음 등장하는 문헌은 『주역』의 「계사전」이다.03 이 말의 뜻을 명확하게 알기 위해서는 먼저 음양의 개념부터 이해할 필요가 있다. 청나라 말기 대학자였던 양계초(梁啓超, 1873~1929)에 의하면 ‘陰’과 ‘陽’ 자의 부수에 해당하는 ‘阜(阝: 언덕 부)’는 후대에 붙여진 것이므로 원래 글자는 ‘侌(음)’과 ‘昜(양)’이라고 한다. 또한, 侌의 본래 의미는 ‘구름이 해를 가린다’는 것이며, 昜의 본의는 ‘해가 땅 위로 떠올라 깃발을 내걸면 그 깃발이 힘차게 날리는 모습’이라고 한다.04 뒤에 ‘阜’가 보태어짐으로써 양은 ‘산 측면의 햇빛이 비추어지는 곳’, 음은 ‘햇빛이 비치는 반대편 산 측면의 그늘진 곳’이라는 의미로 정착되었다.05

 

음과 양은 본래 독립적으로 쓰이다가 『시경』이나 『춘추좌전』 등에서부터 ‘음양’이라 붙여 쓴 용례가 나타나기 시작한다.-물론 음과 양이 독립적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이때는 음양이 음지와 양지라는 본래 의미와 방위, 기후의 차갑고 더움 등을 나타내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후 전국시대 대표적 문헌인 『노자』·『장자』·『순자』에서는 ‘천지만물의 근원이 되는 두 가지 기운(二元氣)’이라는 뜻으로 변용되기도 하며 의미가 획기적으로 변화한다. 그리고 이보다 조금 후대인 전국시대 말에 『역전(易傳)』(특히 「계사전(繫辭傳)」)이 성립되면서 질적인 변화가 이루어진다. 여기에서 음양이 ㅁㅁ과 ㅁㅁ으로 표상된 이원적 개념을 대표하는 용어로 채택되면서 범주적 의미로 변용되었다. 예컨대 천-지, 길-흉, 대-소, 동-정, 고-저 등등과 같은 상대적 개념을 모두 포섭하는 하나의 범주로 음양이 사용되었다는 뜻이다.06

 

이처럼 범주적 의미로 쓰이기 시작하며 음양은 자연세계를 해석하는 하나의 이론체계로 성립된다. 예를 들면 낮과 밤, 봄·여름과 가을·겨울, 남자와 여자, 물과 불 등등 모든 사물과 현상이 음양이라는 상대적 원리로 구성되고 운행한다는 이해 방식이 보편화하였다는 말이다. 이 음양론은 전국시대 말에 다시 오행설과 결합하여 ‘음양오행설’을 낳았고, 이후 오늘날까지 우리나라를 비롯한 한자문화권에서 사람들의 의식 저변에 자리하며 세계관과 문화의 토대가 되었다. 특히, 지금도 의술·풍수지리·명리학(命理學)·전통음악 등의 이론적 틀로 기능하며 우리의 생활 속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음양의 관계는 전통적으로 ‘대대(對待)’라는 용어로 표현되었다.07 이는 주자(朱子)의 “대저 음양을 순환으로써 말한 자도 있고 대대(對待)로써 말한 자도 있다”08는 말과 다산 정약용의 “성인(聖人)이 역(易)을 지음에 음양대대(對待)로써 천도(天道)를 삼고 역도(易道)를 삼았을 뿐이다”09라는 말을 통해 알 수 있다. 여기에서 대대란 ‘서로 대립되어 있으면서도(對) 서로를 기다린다(待)’는 의미다. 다시 말해서 자신과 반대되는 성질을 가진 타자를 서로를 위해 필요로 하는 관계로 파악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대의 관계에서 더 나아가 서로 필요로 하는 것을 주고받게 된다. 이것이 바로 음양합덕이다. 여기에서 ‘주고받는 것’을 ‘덕’이라 함은 그것이 자신과 타자 혹은 주변의 존재가 좋은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기여하는 ‘무엇’이기 때문에 덕이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설명하면, 밤과 낮이 교차함에 따라 모든 생명이 휴식과 활동을 번갈아 하며 삶을 영위해 나가고, 암컷과 수컷이 만나 새끼를 낳고 자신들 종(種)의 무리를 유지해 나가는 것 등이 모두 음양합덕이다. 『전경』의 「음양경(陰陽經)」에서도 “천지의 일이 모두 이 음양 가운데에서 이루어진다”(교운 2장 42절)라고 말씀하셨다. 이 자연세계의 모든 현상이나 사물이 음양이라는 대대적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곧, 자연은 음양 관계로 이루어져 있고 이러한 관계 속에서 서로 그 덕을 합함으로써 조화롭게 생명을 이루어나가는 것이다.

 

하지만, 선천에서는 인간과 사물이 모두 상극(相克)에 지배되었고 억음존양(抑陰尊陽)과 음양난잡(陰陽亂雜)으로 말미암아 음양이 온전하게 합덕을 이룰 수 없었다. 그러므로 상제님께서 천지공사를 통해 이러한 선천의 상극 질서를 정리하시고 후천의 무궁한 선경을 열고자 하신 것이다. 이 공사의 원리 중 하나가 바로 음양합덕이다. 대순진리로서의 음양합덕은 단순하게 음과 양이 덕을 합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반드시 정음 정양(正陰正陽)을 바탕으로 한 합덕을 말한다.10 여기에서 ‘정’이란 ‘올바름’을 뜻하는 것으로, 곧 음과 양이 각각 올바름을 갖추어야 한다는 의미다. 달리 말해서 ‘정’은 합덕의 전제가 되는 것이다.

 

예컨대, 하늘과 땅의 경우라면 하늘과 땅이 그 덕을 온전하게 하는 것이 정음 정양이다. 하늘과 땅이 온전하게 합덕하여 조화(造化)를 이룸으로써 수·화·풍(水·火·風)의 재해가 사라진 상서로운 자연환경이 조성될 것이며 만물만상이 또한 안락(安樂)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남녀의 경우라면 억음존양에 의한 남존여비가 아니라 남녀평등이, 음양난잡이 아니라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결합하여 가정을 이루는 일음일양의 대응을 정음 정양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차원에서 나아가 남녀가 각기 자신의 도리와 역할을 온전하게 행해나갈 때 비로소 정음 정양이라 할 것이다. 이처럼 대대관계인 음양이 덕을 합한다는 일반적인 차원의 합덕과 질적으로 다른 합덕을 의미하는 것이다. 여기에 대순진리로서의 음양합덕은 차별성이 있다.

 

 

음양합덕의 실천은 화합

 

이제는 음양합덕의 진리를 닦음이라는 실천적 차원에서 살펴보도록 하자. 음양합덕의 실천적 의미는 무엇일까? 여기에 대해 도전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훈시하셨다.

 

 

음양합덕은 정음(正陰) 정양(正陽)이며 천지인신(天地人神) 정 위치이다. 덕이 합하는 것은 화합이다. (1984.5.1)

 

 

음양합덕은 상대가 서로 화합을 하는 것이다. 상대란 대하는 사람, 즉 남이다. (1984.5.3.)

 

 

먼저 앞 구절의 ‘덕이 합하는 것은 화합’이란 말씀은 논리적으로 음양합덕이 곧 화합이란 것이다. ‘화합(和合)’이란 ‘조화(調和)롭게 합한다’는 의미로 음과 양이 조화롭게 서로의 덕을 합하는 것을 말한다. 이 화합은 “공동체의 화합과 발전을 위하여”라는 말처럼 일반적으로 인간관계에서 서로 덕을 합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화합이란 개념을 더 넓게 확대하면 위 구절의 말씀처럼 인간관계의 차원을 넘어 천과 지, 인(人)과 신(神)이 덕을 합하는 것까지도 화합이라 말할 수 있다.11 그런데 이 화합은 무조건 이루어지지 않는다. 반드시 화합의 주체인 음과 양 각각이 올바른 상태여야 한다. 이러한 까닭에 ‘정음 정양’이며 음양 관계인 천과 지, 인과 신의 경우도 모두 바른(正) 위치에서 올바름을 유지해야 비로소 합덕이 성립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곧, 정음 정양은 화합의 전제조건이 된다.

 

다음으로 뒤 구절의 ‘상대(相對)’라는 말은 ‘나와 마주 대하는 사람’이란 뜻이다. 나의 입장에서 보면 상대는 내가 아닌 타인이다. ‘아(我)’와 ‘비아(非我)’의 관계로서 서로 음양의 관계가 성립한다. 그러므로 내가 상대와 서로의 덕을 합하는 것이 ‘화합’이며, 바로 음양합덕인 것이다. 여기에서 덕은 그 의미와 이에 따른 여러 항목을 몇 마디 말로 정리하기에는 무리가 따르지만, 크게는 두 가지 범주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명덕(明德)과 재덕(才德)이다.12 덕을 합한다는 말은 명덕을 바탕으로 각자가 가진 각양각색의 여러 재능을 서로 합한다는 뜻이라 할 수 있다.

 

한편, 합덕해야 할 상대는 어떤 고정된 특정인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수시로 그 대상이 변한다. 그러므로 내가 여러 가지 상황에서 상대인 타인과 덕을 합하여 일을 이루어가는 것이 화합인 것이다. 이 화합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힘써 단련해가는 것이 바로 음양합덕의 진리를 닦는다는 의미가 된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남자와 여자를 비롯하여 선각자와 후각, 직장 상사와 부하 직원, 스승과 제자, 어른과 아이, 인간과 자연, 인간과 신(神) 등등이 모두 음양 관계임을 알 수 있다. 이 양자가 서로의 덕을 합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것이 바로 음양합덕의 실천이며, 이를 통해 조화롭고 행복한 세상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리고 한 개인의 차원에서 생각해보면 마음[心]과 육체[身], 정신적인 안정과 물질적인 부(富) 등도 음양의 관계로 볼 수 있다. 마음이 올바르고 육체가 건강하여 서로 조화롭게 균형을 이룰 때 사람은 온전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 또,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의식주를 비롯한 여러 활동에 많은 재화가 필요하므로 그에 걸맞은 물질적인 부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부가 넉넉하다고 하여 정신적인 안정이 적절히 갖추어지지 않으면 역시 사람은 행복할 수 없다. 따라서 이들 양자 역시 합덕하여 조화를 이루도록 노력해야 하는데, 이것 역시 음양합덕의 실천이라 할 수 있다.

이제는 마지막으로 화합을 위해 갖추어야 할 정음 정양에 대해 좀 더 알아보자. 정음 정양은 음과 양이라는 화합의 주체가 각기 자신의 덕을 온전히 하는 것을 말한다. 곧, 자신의 본분을 다한다는 뜻이다. 예를 들면, 부모와 자식이 각자의 도리를 다하고 스승과 제자가 각자의 도리를 온전하게 행하는 것을 말한다. 또한, 우리에게 있어서는 수도인으로서의 본분과 자신이 맡은 직분을 온전하게 수행해나가는 것을 뜻한다. 이에 대해 도전님께서는 “화합이 되려면 공명정대하고 상대방의 의사를 존중하며 법도대로 일 처리를 해야 한다. 임원은 모든 처사에 공명정대하고 편벽됨이 없어야 한다”(1989. 2. 10)라고 임원들에게 훈시하셨다. 임원은 임원으로서 자신의 직분을 공명정대하게 수행하여야 소속 방면 수도인들의 화합이 이루어진다는 말씀이다. 임원은 많은 책임을 가지고 있으므로 공명정대하고 편벽됨이 없게 행동해야 비로소 온전하게 직분을 수행했다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론: 화합이 생활화되도록 하자.

 

지금까지 ‘음양합덕을 힘써 닦는다’는 말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았다. 하지만, 수도의 과정에 있는 우리가 음양합덕의 진리를 온전하게 파악한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 무한하고 오묘한 진리를 어떻게 다 알 수 있겠는가? 부족하나마 이 글에서 도전님의 훈시에 근거하여 음양합덕의 실천적 의미를 궁구하려고 노력하였다. 이를 통해 천지의 운행원리로서의 음양합덕이 실천적 차원에서는 화합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다시 말해, 대순진리회의 수도인으로서 심신(心身)의 조화 등과 같은 개인적 차원에서의 합덕뿐만 아니라 항상 상대와 화합할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하도록 정성을 다하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여기에서 ‘상대’는 다른 사람뿐만이 아니라 자연, 신 등등을 포괄하는 매우 광범위한 차원을 아우르는 말이다.) 이러한 노력은 특히 편벽됨이 없이 공명정대하게 행동하며 스스로의 명덕과 재덕을 올바르게 갖추어야 함을 전제로 해야만 한다. 이것이 도전님께서 말씀하신 ‘정음 정양’이다. 우리는 이 가르침을 반드시 수행해야 한다. 이것이 수도하는 우리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도통에 이르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한편, 지행합일(知行合一: 앎과 행동이 한결같이 일치해야 한다)이란 명제는 인간의 삶에서 중요한 과제 중 하나다. 앎이 단순하게 지식의 축적이라는 차원에서 끝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결국, 행동으로 옮겨져 실행되었을 때 앎은 비로소 가치가 있는 것이다. 한 평생 진리를 실천하며 살아야 하는 수도인에게 지행합일은 어쩌면 숙명과도 같은 명제다. 이제는 천지공사로 말미암아 천지만물이 모두 온전한 음양합덕을 이루게 되었다. 그렇다고 합덕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상제님께서도 일을 꾸미는 것은 하늘에 있지만, 그 일을 이루는 것은 사람에게 달려있다고 말씀하셨다.13 따라서 우리는 반드시 음양합덕의 진리인 화합이 생활화되도록 정성을 다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전경』

『대순지침』

『대순진리회요람』

『주역』

『주자대전』

정약용, 『여유당전서』

양계초ㆍ풍우란 외, 『음양오행설의 연구』, 김홍경 편역, 서울: 신지서원, 1993.

최영진, 『유교사상의 본질과 현대성』, 서울: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2003.

_____, 「역학사상의 철학적 탐구」, 성균관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1989.

 

 

01 『대순진리회요람』, p.6.

02 이 설명은 『대순진리회요람』의 8쪽(「취지」)에 자세히 서술된 ‘대순진리’ 개념을 요약한 것이다.

03 「계사하전」, 6장. “子曰, 乾坤, 其易之門邪. 乾, 陽物也, 坤, 陰物也, 陰陽合德而剛柔有體.”[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건과 곤은 역(易)의 문일 것이다. 건은 양물(陽物)이고 곤은 음물(陰物)이니, 음과 양이 덕을 합하여 강(剛: 굳셈)과 유(柔: 부드러움)가 체(體)가 있게 되었다.”]

04 양계초ㆍ풍우란 외, 『음양오행설의 연구』, 김홍경 편역 (서울: 신지서원, 1993), pp.29-30.

05 최영진, 「역학사상의 철학적 탐구」 (성균관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1989), p.23.

06 같은 글, pp.24-29 참고.

07 최영진, 『유교사상의 본질과 현대성』 (서울: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2003), p.51.

08 『주자대전』 권52, 「답오백풍(答吳伯豊)」. “大抵陰陽有以循環言者, 有以對待言者.”

09 『여유당전서』, 「중용강의보(中庸講義補)」, ‘천명지위성절(天命之謂性節)’. “聖人作易, 以陰陽對待, 爲天道爲易道而已.”

10 뒤에 인용한 ‘도전님 훈시’

(1984.5.1.) 참고.

11 『전경』의 「음양경(陰陽經)」에서도 “신과 인간이 화(和)하여 만 가지 일이 이루어지고, 신과 인간이 합(合)하여 백 가지 일[工]이 이루어진다(神人和而萬事成, 神人合而百工成)”라고 하셨다.

12 “명덕(明德)을 수행하고 재덕(才德)을 계발하여 지선(至善)에 이르도록 힘써 나가야 한다”(『대순지침』, p.46.)는 말씀에 근거하여 덕을 명덕과 재덕으로 범주화할 수 있다고 보았다. 명덕은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마음에 갖추고 있는 선한 본성을 말하는 것으로 ‘마음의 덕(心德)’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재덕이란 타고난 면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주로 경험과 노력을 통해 후천적으로 습득한 ‘재능’을 뜻한다. 이 중에 명덕은 근본으로서 재덕의 바탕이 되어야 한다. 명덕이 바탕이 되지 않고는 재덕은 그 가치를 상실하기 때문이다.

13 “선천에는 ‘모사(謀事)가 재인(在人)하고 성사(成事)는 재천(在天)이라’하였으되 이제는 모사는 재천하고 성사는 재인이니라.”(교법 3장 35절)

 

 

<대순회보 20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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